'천하장사에서 파이터로' 이태현의 거듭나기





        







"몸살 났습니다" 

16일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 위치한 팀 이지스 체육관, 이태현(30, 팀 이지스)이 엠파이트 취재진을 보자 웃으며 꺼낸 말이다. 프라이드 진출을 선언하고 지난 9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 이태현, 백두장사 18회, 천하장사 3회를 차지한 명실상부 최강의 씨름장사지만 안쓰던 근육을 쓰려니 여간 고된 게 아닌 모양이다. 196cm, 130kg으로 기골이 장대한 이태현이 몸살났다니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새내기 이태현의 허물벗기 

체계적인 스케줄대로 훈련을 시작한지 일주일, 이태현은 종합격투기 훈련의 고됨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같이 훈련하는 팀원들은 쉬는 시간에도 뒹굴면서 장난을 치더라구요" 자신은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몸을 푸는데 종합격투기 훈련을 오랫동안 해온 팀 동료들은 쉬는 시간에도 그러고 있느니 이해가 안가는 모양이다. 




사실 20년동안 모래판에서 성장해온 이태현에게 때리고 구르고 꺾는 훈련과정은 생소하기만 하다. 안쓰던 근육을 쓰려고 하니 온몸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다. 주짓수 훈련시 가드포지션에서 상대를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다. 미트를 향해서 펀치를 던질 땐 배운대로 할 수 있지만 링에 올라 움직이는 상대를 맞추려니 진땀을 뺀다. 다리 가랑이를 찢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럽다. 그의 가장 안쓰러운 표정(?)도 이 훈련과정에서 볼 수 있었다. 


살인적인 훈련 시간표 





이태현이 몸살난데는 '살인적인 훈련 시간표'가 한몫했다. 이태현은 욕심이 많다. 한 번 결심을 했으니 이 바닥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가 굳건하다. 그래서 조금은 무리지만 복싱, 주짓수, 태권도 등 다양한 투기 스포츠훈련에 로드웍,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하고 있다. 

그가 공개한 일주일간 스케줄은 이렇다. 일단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6km 로드웍을 실시한다. 그리고 오전 10시부터 복싱 훈련을, 오후 2시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 4시부터 주짓수 훈련을 받는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저녁식사를 하곤 8시부터 태권도 발차기 훈련을 소화한다. 하루 10시간 가량 체육관에서 사는, 그야말로 '하드 트레이닝'이다. 

휴식을 취하는 일요일을 제외하곤 훈련에 훈련, 또 훈련이다. 피곤함을 느낄 겨를도 없을 정도. 이태현이 몸살에 고생하는 이유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생활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단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 6시면 눈이 떠집니다. 해야할 일이 있고 이뤄야할 목표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일어나게 되요. 반복의 연속이지만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지네요" 새내기 이태현은 고된 훈련 속에서 종합격투기의 매력에 한껏 빠져들고 있다. 


'동료가 있기에' 이지스와 이태현 





이태현은 그와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더욱 힘이 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통해 프라이드 진출을 선언하고 9일 종합격투기팀인 '팀 이지스(Team Aegis)'를 결성했다. 국내외 여러 대회에서 경험을 쌓은 젊은 파이터들을 영입하고 합동훈련에 들어갔다. 프라이드 무사도 출전 경험이 있는 김진오, 그라운드 기술의 스페셜리스트 김훈, 미시마 도곤조노스케를 눕힌 철권 방승환, 전국체전 1위 경력의 아마레슬러 김직용 등이 가세, 팀 이지스를 구성했다. 




20년동안 씨름선수 생활을 하면서 팀훈련에 익숙한 이태현은 동료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지난 15일 네오파이트 대회에서 승리한 방승환이 숙소로 돌아오자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는 오는 19일 스피릿MC 인터리그4에 '팀 이지스'의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링에 오르는 김직용의 세컨드로 대회장을 찾을 예정이다. 그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동료들은 커다란 힘이다. 이태현은 "지금 함께 하는 동료들 때문에 즐겁게 훈련할 수 있습니다. 종합격투기에서는 제가 후배이기 때문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배우는 입장이라서 동료들의 훈련을 따라가기 위해 애씁니다"고 말했다. 훈련시엔 후배, 평상시엔 운동 선배로(?) 활동하는 이태현은 이날 훈련이 끝나자 팀원들과 대중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일본어 공부도 척척 





이태현은 공부 욕심도 많다. 프라이드의 주무대가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어 공부도 틈틈이 하고 있다. 체육관에서 일본어 학원이 가까워 기분 좋다는 이태현은 '주경야독'의 표본이라 불릴 만하다. 이지스 매니지먼트의 이재철 대표는 "하루 24시간을 쪼개 해야할 일을 실천하는 이태현의 성실함에 놀랄 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이태현 본인은 시간이 없다며 아쉬워한다. "몸이 두 개라면 좋겠습니다"라며 우스개 소리를 던지기도 한다. 종합격투기 숙소훈련을 시작하면서 아내, 아들과 떨어져있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이태현은 몸 하나는 훈련을 소화하고, 다른 몸 하나는 가족과 함께 지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이 서른에 새로운 출발점에 선 이태현은 성실한 자세로 종합격투기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 최강에 오르려면 이 정도는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이태현은 목표를 위해 달려나갈 모든 준비가 되어있는 듯 보였다. "운동할 때가 제일 편합니다"라고 말하는 이태현에게서 천하장사의 묵직함과 함께 종합격투가로서의 열정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