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크로캅, 벽을 뛰어 넘어라'





        













사진 Dream Stage Entertainment. Inc 제공








미르코 크로캅(31, 크로아티아)에겐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재능, 실력, 인기 뭐 하나 모자란 것은 없지만 한 번도 챔피언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과거 K-1 시절부터 현재 프라이드 무차별급 GP 결선에 오기까지,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정상문턱에서 미끄러졌다. 

‘운이 없었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 수년에 걸쳐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니 이젠 크로캅에겐 중요한 순간에 미끄러지는 것이 버릇으로 굳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K-1 시절 크로캅을 괴롭힌 것은 다름아닌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토 호스트였다. 







1999년 K-1 월드그랑프리 결승전에서 크로캅에게 KO패를 안긴 선수가 호스트다. 이후에도 두 번이나 더 크로캅에게 승리를 거둔 호스트는 크로캅에겐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남고 말았다. 

K-1, 프라이드를 오가던 크로캅은 2003년 6월 ‘프라이드 26’ 대회를 기점으로 종합격투기로 완전히 전향했다. 히스 헤링, 이고르 보브찬친, 도스 카라스 주니어를 연이어 격파하며 달콤한 꿈을 꾸던 것도 잠시, 크로캅에겐 더 많은 좌절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크로캅에게 프라이드 최초의 패배를 안겨준 선수는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다. 챔피언 효도르가 부상으로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자 크로캅은 노게이라와 잠정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격돌했다. 비록 잠정챔피언었지만 그것으로도 좋았다. 노게이라를 꺾으면 챔피언 효도르와의 타이틀 통합전도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더욱 의욕적으로 임했다. 

2003년 11월 ‘프라이드 미들급 GP 결선’에 벌어진 헤비급 잠정챔피언 결정전, 1라운드가 끝날 때만 해도 크로캅은 벨트를 곧 허리에 감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2라운드 단 한번 테이크다운을 허용한 것이 패배로 이어졌다. 타이틀 벨트를 눈앞에서 놓친 것도 모자라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크로캅이 노게이라의 암바에 걸려 바닥을 두드리며 항복을 선언한 것은 그 자신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헤비급 그랑프리에 나선 크로캅이었지만 이번엔 그랑프리 1회전에서 한수 밑 상대 케빈 랜들맨에게 1라운드 KO로 패배했다. 타이틀을 향한 여정에서 두 번째 맛보는 좌절이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케빈 랜들맨 시합 이후 크로캅은 도전자 자격을 따내기 위해 13개월 동안 무려 일곱 번을 싸워야 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 끝에 간신히 효도르와 타이틀전을 가지게 됐으나 결과는 역시 패배, 다시 벽에 가로 막혔다. 

크로캅의 일부 팬들은 패배하면서도 꿋꿋이 최강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크로캅의 이런 모습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영웅의 모습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크로캅이 아직 역경을 극복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실력과 재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벽에 가로막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오는 10일 열리는 ‘프라이드 무차별급 그랑프리 결선’은 크로캅에겐 또 하나의 중요한 기회이자 벽으로 다가온다. 우선 반더레이 실바를 이기고, 노게이라-바넷 시합의 승자와 다시 시합을 치러 승리해야 한다. 상대선수들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토너먼트에 약한 크로캅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크로캅은 이 두 가지 벽을 뛰어넘어야 ‘프라이드 무차별급 GP 챔피언’이라는 생애 최초의 메이저단체 타이틀을 얻을 수 있고, 최종목표점인 효도르에게 다가가는 길이 열린다. 

이때까지 크로캅을 움직여왔던 것은 타이틀에 대한 갈망이었다. 타이틀을 코앞에 두고 번번이 미끄러졌고, 그때마다 그 갈망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났다.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선 한번쯤 벽을 훌쩍 넘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크로캅이라고 언제까지고 ‘헤비급 빅 3’로 만족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